고찰

사랑하지 않는 연애

Felielix 2022. 8. 31. 21:26

'이제 슬슬 진지한 만남을 하고 싶어'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진지하게 연애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한다면 당연히 자연스레 결혼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좋으면 결혼하는거지~'가 내가 당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고,

진지한 연애라는 건 가벼운 연애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었을 때 성립하는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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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늦가을, 축제를 한 후에 나는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같은 재단의 남고와 여고가 함께 하는 축제에서 무대에 올라 블락비의 'Her'을 추며 공연을 했는데

이 덕에 방송부 부기장이었던 친구의 주선으로

여고 방송부 부원이었던 여자애를 소개받았다.

나름 눈이 높았던 내게 휴대폰 화면 속 그 애는 나쁘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한 번 만나 보기로 했다.

사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안 그래도 남고에 다니던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연애 한 번쯤은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관계에서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 지 몰랐고,

오래 끌면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서로 알게 된 지 일주일 남짓이 지나



고백을 박았다.


할 말이 있다며 불러내고 난 후 몇 초간 망설이는 척, 냅다 고백했다.




'흠.. 어떻게 할까~'

몇 초간 뜸을 들이던 그 여자애는 내가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자 알겠다며 사귀자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을 하고, 그 고백이 받아들여졌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기쁘고, 현실감이 없었다.

아, 나도 드디어 여자친구가 생겼다! 하며 한껏 들떴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그 여자애는 우리가 사귀는 걸 페이스북에 게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심 자랑하고 싶었던 나는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 뭐, 연애는 같이 하는 거니까

상대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존중해야지.

그렇게 나는 알겠다고 했다.



인생 첫 번째 연애는 그닥 순탄치 않았다.

내 직설적인 성격과 하고 싶은 말은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덩이와 같았고

공부가 가장 우선이던 내게, 여자친구의 연락은 엄청 귀찮지만

연인이기에 해야하는 의무와도 같았다.



아니, 애초에 나 말고도 기숙사 룸메이트중 한 녀석은 여자친구가 통화해야 한다고 해서

매일 야간점호가 끝난 뒤 자정 즈음부터 테라스로 몰래 기어나가 수 시간 동안이나 전화를 붙들고 있곤 했었다.

내가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 녀석이 미친놈 같았는데,

내 연애가 50일을 향해 갈 즈음에는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곤대던 나에게 보살같던 다른 룸메이트가 짜증을 냈을 때

처음으로 내 모습을 자각했다.

고등학생의 나에게 연애라는 건 그 만큼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있는 기숙사 외박 복귀 날이었나,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에 여자친구 얼굴을 잠깐 보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조금 늦어서

'늦은 김에 선물이나 사들고 가서 이거 사느라 늦었다고 해야겠다'

라며 내 상반신만한 곰인형을 사서 선물했던 날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그 여자애가 나에게 볼 뽀뽀를 해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뽀뽀를 받았는데,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어..? 왜 생각했던 것만큼 기쁘지가 않지?'

첫 번째로는 얼떨떨함을

'야 표정 임마, 빨리 어? 이대로 있으면 ㅈ 돼! 리액션 해'

두 번째로는 당혹감을

'근데 원래 이렇게 별 거 없는 건가?'

세 번째로는 이상하게 두근대지 않는 내 마음을 뒤로 한 채

그걸 기뻐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리액션으로 포장했다.

여자친구가 내게 마음을 표현했기에 내가 보여줘야 할 모습을

나는 기계적으로 연기했고, 그 연기가 나 자신 또한 그렇게 믿을 수 있게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인생 처음으로 여자친구에게 뽀뽀를 받은 날은,

내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이유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나는 그 여자애의 기준에서는 굉장히 불성실한 남자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연애를 기준삼아

나에게 남자친구로서의 정해진 역할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인 채로 솔직하게 그 애랑 마주하고 싶었고

우리 둘 사이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역할의 차이로 인해

나는 상대가 바라는 것을, 상대는 내가 바라는 것을

아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작은 싸움이 지나가며

나는 사과하고

나는 지치고

나는 힘들어져 갔다.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울어버리는 그 애 앞에서 내 솔직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그래도 속상하다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면 그만큼 소중히 대해 줘야지.

연애는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한창 여자와의 소통 방식을 이해해가고 있을 무렵

그 여자애는 자기 친구 남친은 자기 친구한테 뭘 해줬고 어떻게 대한다며 나에게 얘기해왔고,

나는 '그래 연애가 원래 이런건가보다' 하면서 저쪽 커플이 했다는 건 똑같이 해주곤 했다.

이런 미숙한 관계 속에서도 나는

그 여자애랑 입술을 맞추고 나면 사르르 풀리고

그 기쁨을 양분 삼아 나머지 시간엔 열심히 공부하곤 했다.

여자친구와 만날 시간을 내기 위해서 딱 그만큼의 시간이 날 만큼 나머지 일들을 압축해서 해 두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시간에도 그 애는 계속 연락을 원했기에

매일 잠이 부족했고, 만나면 만날수록 피곤함은 감출 수 없게 되어갔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입은 맞춰도 혀는 안 된다고 계속 거절할 때였던 것 같다.

자기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친구들이랑도 딥 키스는 안 했다면서.

일곱 명인가 여덟 명인가 하는 걔네랑 뭘 했든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뚫리지 않는 이빨 사이를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 아직 우린 미성년자니까.

안 해봤다니 겁날 수도 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첫 볼뽀뽀는 지맘대로 뺏어가 놓고 나에게는 자기의 처음을 주고 싶지 않았나보다.

자기에게 있어서 자기의 처음을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즐거움을 느끼기에 적당한 존재.

서로가 가진 꿈을 지지해주고 서로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도모하기보다는

자기가 관심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만 하는 존재.

그게 그 애에게 있어 남자친구로서의 나였던 것 같다.





누군가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이건 첫사랑이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에게 첫사랑은

소중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경험

별 볼일 없고

딱히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

딱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애랑은 얼마 못 가 헤어졌다.

밥은 먹었냐느니 일어났냐느니 잘 자라느니

하등 쓸 데 없는,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그 애에게 맞추어 했었던 연락을

하루동안 서로 한 번도 주고받지 않고 의외로 굉장히 편하다고 느꼈던 바로 그 다음 날

시립도서관에서 둘이 같이 공부를 하다가 잠깐 머리식힐 겸 로비로 나왔던 겨울방학의 어느 날이었다.



'...왜 안 했어? 연락.'

짜증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 플랫한 목소리로 그 애가 나에게 물었다.

'너도 안 했잖아. 연락은 서로 주고받는 건데'

뭐라고 할 수 없는 무적의 논리. 내가 이 논리에서 질 일은 없다.

한참의 침묵과 빙빙 돌리던 말들 사이로 그 애 입에서

결국 그 말이 삐져나왔다.





'우리.. 잘 안 맞는 것 같아.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낼래?'
'그래'

타이밍에 맞추어 마우스를 클릭해야 하는 반사신경 테스트처럼

저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애의 이별신청을 수락했다.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 상황은 연인을 최우선으로 두기엔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을 느꼈고

이미 그 애는 전남친과 남사친이라며 연락하던 게 나한테 걸려 내가 노발대발 했던 기억이 있었으며

여자친구가 있어도 다른 여자가 진짜 이쁘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요구하고 심지어 나한테 전화를 걸어놓고 나보고 다시 전화하라며

나만 전화요금을 많이 냈어야 하는 상황에 질렸었으며

이미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서 정작 만나서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을 땐 할 말이 없어 어색해하던 나를 느꼈고

끊임없이 내 사랑을 시험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상황들이

지긋지긋했다.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이겠지만

그 때의 나는 내가 차이는 게 그 애 면이 조금이나마 더 살 것이라며

그만하자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애와의 관계 속에서 배운

내 나름의 배려이자 마지막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애는 생각보다 빠른 내 대답에 살짝 당혹스러워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 말을 한 건 그 애였고,

내가 그 애를 붙잡아주길 바랐다면 가소로워하며 경멸스럽게 비웃을 수 있었을 정도로 나는 그 때

이별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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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어쩌다 보니 꽤 오래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과 한국을 자주 나다니고, 코로나 시기에 군대에 갔고, 나와서는 시험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와중에 내가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내 성에 차지 않았고

내가 호감이 있었던 사람 앞에선

내가 너무 잘 보이려고 했거나,

너무 조급했거나,

혹은 조금 알아가다 보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전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반복될 것처럼 보여서

잘 되지 못했었다.



딜레마다.

어떨 때는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고선 감정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해 망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연애에선 진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소중하기에 조심스럽고 그렇기에 매력이 없어 보인다.

별로 소중하지 않기에 나를 편하게 드러내고, 그렇기에 매력이 있어 보인다.

소중한 소망은 하늘 위 무지개와 같아 아무리 좇아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닐까.



진짜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행복을 느끼며 서로 의지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건 어쩌면 굉장히 어려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누구에게나 운명의 짝이 있다는 생각은 그냥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사랑하지 않음에도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허무감과 공허함을 느꼈다.

마치 신을 믿던 사람들이 신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그런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좇던 환상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며

사람들은 이미 서로 정말 사랑하지 않더라도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으니까

연애하는 기분을 내고 싶으니까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으니까

가짜 연애를 하고 있다.



이런 연애를 두고 사람들은 '가벼운 연애'라고 부르는 걸까.

그래서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를 구분짓는 걸까.

나 또한 별로 사랑하는지 모르겠어도 적당히 괜찮다 싶으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연애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그저 그런 연애를 하고 있을까.

일단 그렇게 시작해서 많이 만나다 보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런 이름의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걸까?


나는 가벼운 연애인데, 상대는 진심이면 상대에게 상처가 될지,

아니면 그런 것 따위 내 알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일지,

모르겠다.



공허감과 갈망 속에 두려움을 품고

조금은 시니컬하게 남녀관계를 바라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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